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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오 프랑스 유학원 소개

CIO 프랑스 유학원 원장님 수기

CIO 프랑스 유학원 원장CIO 프랑스 유학원 원장 프로필
석 손숙 원장
- Picardie 국립대학교 Sciences Naturelles 학사 학위
- Picardie 국립대학원 Sciences Naturelles 석사 수료
- 제24회 88 서울 올림픽 V.I.P 수행통역원 협회 초대 회장
- 제24회 91 서울 세계주문복업연맹총회 동시통역. 수행통역원 총회장
- C.I.O 프랑스 유학원 원장

나의 프랑스 유학시대 -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지난 82년 12월경, 내가 김포공항에서 출국할 당시의 모습은 무척이나 초라했었다. 그 당시 유학이라 하면 박사학위를 위하여 미국으로 떠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교수들이나 연구원들이 국비로 출국했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런 차원도 아니고 또 경제적으로 유학을 떠날만큼 여유있는 형편이 아닌 시골 출신이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의지 하나만은 강했다. 물론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많았지만 평소 학문에 대한 집념이 강했고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더욱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결국 1년동안 고심 끝에 결정한 것이었다.


프랑스는 대학생들의 천국이다.

불어를 전혀 모르고 또 시기적으로도 2학기 수업이 시작되려면 1개월반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일단 Besancon에서 주당 25시간 Coursintensif를 신청했다. 연수비는 주당 6만원(470Fr : 83년 l윌 기준) 한달 평균연수비는 27만원,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돈이었다. 200만원 남짓 준비한 유학비용에서 비행기값, carte de sejours(체류증)를 얻기 위해 필요한 3개월 어학등록연수비를 제하고 나니 70단원 정도가 남았다.
희망에 부풀었던 프랑스 유학이 시작된지 꼭 110일만에 경제적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던 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한국사람의 소개로 Besancon에 체류한 6개월중 나머지 석달은 베트남 난민들을 위한 무료 불어연수 수업에 등록하여 공부했다. 그 곳에 체류하는 동안 불어를 배우는 것은 수업을 열심히 수강하는 것 뿐 아니라 현지에서 생활하는 프랑스인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더 실질적이라고 판단되어 아르바이트를 찾기로 결심했다. 또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머물고 있는 도시에서 아르바이트를 찾기에 노력했지만 Besancon은 경제적으로도 다른 도시에 비하면 많이 뒤쳐져 있었고 또한 난민들도 많아서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인근의 부자도시인 strasbourg에서 구해보았더니 쉽게 일자리가 있었다. 내가 찾은 일은 jeunefille au pair 라는 일명 프랑스 가정집에서 애기 보는 일이었다. 하루 3시간 Patrica라는 6살된 국민학교 l학년 학생을 돌보는 일인데, 그 아이가 학교에서 오면 목욕시키고 저녁을 준비해 침대에 눕히는 일이었다. 오후 7시가 되면 그녀의 엄마인 Mme JUNG Yolande가 퇴근해서 모든 것을 점검하기도 했는데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며 재우는 일로서 하루일과는 끝났다. 그 댓가로 난 숙식을 제공받았으며 한달에 십만원 정도의 용돈과 strasbourg II 대학에서 실시하는 1년분 어학연수비용을 제하고도 1년후 내 통장에는 130만원이 저축되었다.
10월 학기가 시작됨에 따라 정들었던 strasbourg 프랑스 가족을 떠나 500km 정도 떨어진 picardie국립대학으로 옮겼다 기숙사비는 매월 5만5천원(430Fr). 대학 등록비는 1년에 7만월 정도 (500Fr)가 들었는데 도서관 시설이 잘 되어 있어 따로 책을 구입할 필요는 없었다. 프랑스 학생들과 잘 어울려 지내면서 생활 했는데도 예상외로 프랑스 학생들은 근면하고 사치를 모르는 생활이었기에 1달 생활비 15만원 정도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전공이 이공계통이었는데 수업료는 국가부담이고 자유자재로 실험실을 출입할 수 있었다 자기 전공분야에서 학문 연구를 하는데 모든 제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내가 본견지로 프랑스의 교육제도는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프랑스 학생들의 사고방식은 낭민적이기보다는 지적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생각하는 프랑스는 세느강변의 연인들. Montmartre의 화가들을 연상케하는데 실제로 그들은 토론하는 것을 좋아한다. 화제가 무엇이든 정치, 경제, 사회 꼭 자기전공이 아니더라도 타학생이 전공분야를 얘기할 때는 관심 있게 들어주고 흥미를 가진다. 내가 한국인이라 특히 한국의 노동자문제, 임금, 남북관계로 인한 정치문제들은 나보다도 더 관심을 가지며 역사 서적들과 증언 서적들을 보여주면서까지 설명해 주었다.


개방적이라고 하지만 보수적이다.

나에게는 별나게 프랑스 친구가 많다. 이유야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반에서 외국인이 나 혼자였으며 그 도시에 한국사람이 별로 없어서 더욱 그랬었다. 특히 Frants라는 학생은 내게 무척 관심도 많았고 도움도 많이 주었다. 밤늦게까지 하루 수업중 이해 못한 부분을 설명해주며 자기 친구의 생일때에도 초대한다든지, 아플 때 병원까지 데려다 주면서 나의 불편함을 최대한으로 줄여주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흘러 내가 불란서를 떠날 때까지 퍽이나 정이 들었다. 하지만 4년동안의 우정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귀국 하루전 그는 Grande Ecole Diplome을 위한 두번째 연수를 가있던 Martini(미국 근처의 프랑스 영토)에서 나를 전송하러 오는 도중 비행기 고장으로 마지막 만날 기회를 놓칠까봐 애간장을 태우며 국제 전화를 하던 모습, 그리고 내가 떠나는 드골공항에 가까스로 2시간전에 도착했던 일, 만나서 나눈 이야기는 몇년전의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흔히들 프랑스 학생들은 성이 완전히 개방됐고, 동양에서 유학오는 학생들을 좋아한다는 것은 프랑스 사람들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프랑스 학생들은 개방적이라기보다는 보수적이고 전통을 중시한다. 소문에 의하면 프랑스의 개방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실의에 빠져 있는 동양 여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성이 개방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경우는 프랑스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대학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스캔들을 일으킬 수 있는 학생이라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그것은 프랑스 문화와 전통에대한 자부심이다. 그러나 프랑스 학생들의 자부심은 무뚝뚝하거나 외국인을 멸시하는 것과는 다르다.


프랑스 학생들은 실질적이다.

88년 7월 중순 한국에 도착한 나는 거리의 모습이 깨끗하고 사람들의 차림새가 무척 화사해서 깜짝 놀랐다. 서울올림픽이 두달전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의 모습이 새로 단장되고 있었다. 오빠가 새 언니에게 내일은 나를 백화점으로 데리고 가서 옷한벌과 신발을 사주라고 했다. 오빠는 유행의 첨단 프랑스에서 온 사람이 Africa에서 온 사람 같다고 했지만, 난 그래도 프랑스 학생들 사이에서는 항상 예쁜 옷을 입는다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한국에서는 내 모습을 보고 초라하다니 ...
찌는 듯한 여름에도 화운데이션으로 화장을 하고 무스로 머리를 단장한 모습과 지하철의 남자옷차림(흰상의와 검은색 계통의 바지)은 거의가 동일해 개성이 없는 화려함에 오히려 서투름이 들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에 있을 때 벨기에에 Geologie 과목중 지형형성에 대한 현지 수업이 있어 교수님과 학생들과 함께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교수님의 옷차림과 꿰맨 가방을 보고 얼마나 오래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13년된 정든 골동품이라고 자랑하시는 모습이 생각나 프랑스 사람들은 역시 실질적이라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다른 문화에 관심이 높으며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86년도 여름 vacances동안 Mont Blanc(몽블랑)이 있는 스포츠의 도시 ChamoniX에서 시간을 보내는중 한국 등반대원 5명을 만났다. 유럽 3대 북벽(그랑죠다스, 마튼호흐느, 아이거)을 정복하러 온 대단한 각오를 가진 수준급의 산악인들이었다. 다행히 같이 vacances를 온 Mme JUNG Yolancle으로부터 자기 별장에 한국사람을 오늘 저녁 모두 초대하자는 제안에 저녁을 같이 먹었다. 물론 오랜만에 한국음식도 준비하고 프랑스 음식도 준비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지독한 냄새가 나는 음식을 먹느냐고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알고보니 냄새가 좀 특이한 Fromage(치이즈) 이야기였다. 그리고는 치이즈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 밖이었다. 프랑스인들은 처음에 냄새가 너무 강하다고 김치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일단 한국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 생각하고 먹기 시작했다. 이제는 김치가 없으면 식사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려웠던 학창시절과 교수님의 도움

학기말 시험을 거의 치르고 마지막 과목인 Physiologie Animale(동물생체학) oral시험[학생이 교수님 앞에서 주어진 문제에 설명하는 것으로써 1 Certificat를 얻기 위해서는 Ecrit(필기), oral(구두), TP/TD(Travaux Pratiques ou Travaux Diriges : 실험실습)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과학점수는 학교마다 틀리지만 대개 20/6-20/10이 보통이다] 특히 이 과목 교수님이 엄하신 분이라 더욱 열심히 공부했었다. 나름대로 수업이외의 전문서적도 찾아보고 의대 학생들에게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설명을 들어서 노트정리도 다시 했다.
점수에 1/2을 차지하는 Ecrit(필기시험인 Neuraphysrologle : 신경학) 과목도 잘 치른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게 웬일일까? 교수님의 외국 출장이란 명목으로 구두시험을 30명 전원을 한꺼번에 치른다는 공고문이 붙었다. 웬지 불길하다는 느낌으로 이번에 시험에 통과되지 않으면 고국을 방문하는 일도 어렵게 되는데 하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시험에 임했다. 너무나 긴장되고 아직도 불어가 부족하다는Complex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0/20점이란 학점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프랑스 도착 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고국방문을 이번 여름 vacances동안만은 꼭 다녀오려는 꿈도 사라지고 3주동안 지친 시험에 기력도 없었지만 시험 방법까지 나에게 무리한 조건이 되어서 시험에 떨어진다면 난 앞으로의 가망이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 용기를 가지고 교수님 연구실을 찾았다. 교수님께서는 내가 찾아오리라는 예상을 하셨는지 나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나의 하소연이 채 끝나기도 전 Licences(학사 학위) Diplome은 프랑스 문교부에서 발행하는 것이니 만큼 개인적으로 학생에게 혜택을 줄 수가 없다는 냉정한 말씀만 하시고는 불어를 잘 못하는 나를 멸시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해서 더욱 기분 나빠 난 더 이상 양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험 방법을 교수님 임의적으로 바꾼 것에 항의하고, 또 Licence과정을 포기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또한 나에게는 학사학위 취득에 필요한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는 것을 보이고 싶으니 교수님의 수업에 대해서 Seminer를 열 기회를 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교수님을 모두 참석하라고 ... 주위의 다른 교수님들께서는 나의 또렷또렷한 목소리와 타당성 있는 주문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고, picardie 대학에서는 그래도 유명하고 엄한 교수님과 저렇게 서로가 지지 않으려고 음성을 높이니까 불안해 하였다. 30분간의 실랑이 끝에 난 교수님의 자존심을 꺾지 못하고 9윌 재시험에 다시 만나 대결하자는 말과 안녕히 계십시오(On verra en septembre. Au revoir Monsieur) 라는 말만 남기고 교수님의 연구실을 나왔다.
여름 vacances 동안 Mont Blanc 근처 chauronix에 있는 별장에서 쭉 공부한 결과 Neurophysiologie 12/20(Ecrit) physiologie Animal 14/20(oral) Travaux Trahque 16/20라는 점수를 얻게 되었고 그렇게 엄했던 교수님도 기뻐하시면서 수고했다는 말씀이 너무나 인자해 보였다.
그리고 Mr. Esteve 교수님은 학교에서는 연구실에서, 방학중에는 집에서 가끔씩 개인적으로 보충수업을 해주셨는데 교수님의 총애를 독차지하니 반 애들의 질투도 많았지만, 교수님 댁에서 보충수업을 할 때 사모님께서 직접 식사를 준비해서 가족적인 분위기가 될 때는 더없이 교수님 내외가 고마웠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희생적으로 나를 뒷바라지 해주시던 교수님께서는 내가 귀국하기 4개월 전, 어느 일요일 별장에서 Crise Cardiaque(심장마비)로 인해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때의 나의 고통은 어찌 이글을 통해서 다 표헌할 수 있을까. 장례식 날 조그만 Plaque(고인의 명목을 빌기 위해 화강암으로 된 돌판)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이 모든 교수님 앞에서는 부끄러웠다. 꼴찌 학생으로 낙인 찍혀 교수님 연구실을 번번히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교수님 사모님께서는 아무도 찾지 않고 나의 이름만 부른채 우린 서로 부등켜 안고 통곡을 했다.
지금 나의 서재에는 교수님께서 손수 쓰신 노트가 몇권의 책으로 만들어져 유품으로 남아 있다. Mr. Esteve 교수님이 없었던들 난 학부과 정도 제대로 못마치고 아직도 프랑스에서 헤매고 있을 것이다. 제2인생을 살게 해준 은인이기에 이 모든 고마움을 모든 프랑스인들에게 돌리고 싶다.


어학연수와 프랑스 유학을 원하는 학생에게 부탁

한마디로 층분한 불어실력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크게 2가지로 나뉘어 지는데 국립대학에 소속한 어학연수와 사럽학교에서 실시하는 것으로 구분한다. 한국에서 불문학과를 졸업한 불어수준이라면 가격이 저렴한 곳을 첫번째로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수업 강의도 문화, 사회, 문학 같은 교양도 있지만 불문학 석사를 위한 것이라면 청강도 할 수 있으며 프랑스 친구도 사귈 기회가 많다고 생각 한다.
불어를 전 혀하지 않은 학생에게는 적어도 6개월 동안은 Cours intensif(평균 주당 25시간의 집중강의)을 주관하는 학교에 등록하는게 좋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가격은 상당히 비싸지만(월평균 40~60만원 정도) 한국 학생에게 이 코스가 필수 불가결할 정도로 장래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충분한 어학 실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학교는 한국에서 잘 알려진 Besancons, Sorbonne(25시간 강의) 등의 학교이다. 그리고 앞으로 국립대학에서 공부하느냐 또 미술, 디자인, 광고 등의 선택에 따라서도 어학 연수는 틀리기에 본인의 성격, 경제능력, 어학실력, 나이에 따라서도 어학연수 학교를 선택해야 하기에 충분한 상담이 필요하며 가능한 한 단체 어학연수는 피하는 것이 좋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불어 회화가 진척 되지않는 상황에서 사정상 프랑스 국립대학을 원하는 학생이 있다면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 하지만 그래도 원하는 학생이 있다면 대단한 각오와 독립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에 사설 유학 정보센터가 많이 있지만 프랑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입수해야 한다.
프랑스 교육제도를 보면 고등학교 졸업자격시험(Baccalaureat)의 종류가 이공계통, 문과계통으로 나눈 우리나라와 달리 여러 분야로 나뉘어진다. 예를 들어서 의과대학, 약대 Biologie계통을 공부하려면 BAC D를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는 지원만 하면 된다. 하지만 들어가기보다는 2학년, 3학년에 올라갈 때마다 통과해야 하는 시험이 있는데 여기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재등록을 해야하며 DEUG 2학년 마칠 때까지의 기간은 대부분 3년까지 연장할 수 있으나 그 기간에도 통과하지 못하면 다른 대학으로 옮겨야 한다. 간혹 대학마다 차이는 있지만 이수학점을 인정해 주는 대학도 있다. 프랑스 국립대학에서 1학년부터 시작하려면 수학이나 물리, 화학 등 불어에 약간의 손색이 있어도 이해할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어쨌든 불어 실력을 층분히 쌓은후 대학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너무 성급하게 대학 등록만 하고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다면 일단 다시 어학연수를 해야 한다.


참고적으로 프랑스의 국립대학의 경우 DEUG(일반교양2년과정) 과정을 통과하는 학생은 50%정도이고 Licence(학사학위)도 85% 정도이기에 외국인으로서의 어려움을 생각해서 최대의 노력과 인내로 어떠한 고통과 외로움을 감당할 만반의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에게 프랑스 유학을 권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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