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개월 전부터 프랑스의 LOCHES란 조그만 마을의 ELIT 중, 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고 1 여학생이다. 우선, 내가 유학 오게 된 계기는 엄마가 중 2때 유학 가고 싶은 마음이 없냐고 물으셨을 때부터였다.

그땐, 그다지 유학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았었다. 내 장래에 대해 확실하지도 않았고,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는 것 자체가 무섭고 싫었을 뿐더러 또 다른 사소한 걱정부터 앞섰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반대로 유학 얘기는 없었던 일로 돼버렸는데, 내가 중 3이 되었을 때 유학에 대해 다시 얘기를 꺼낸 것은 바로 나였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중 3 내신걱정과 고입시험을 피하려고 유학에 대해 생각한 것으로 여기시고는 반대를 하셨다. 솔직히 공부를 하기 싫었다기보다 친구들끼리의 경쟁과 점수(등수)에 대한 무서움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결국 두 번째 유학얘기도 그냥 그렇게 넘어갔고, 고 1때 엄마가, 이젠 유학 갈 생각이 정말 없냐고 물으셨을 때 난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찬성했다.어렸던 중 2때와는 달리 난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난 미술전공을 하고 싶었다. 미술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미술시간이 가장 재미있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미술학원 다닐 때가 정말 행복했었다. 난 프랑스에 가서 미술을 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고, 엄마는 보내시는 쪽으로 결정하셨다. 하지만, 문제는 아빠였다. 아빠는 예상대로 완강히 반대하셨고, 엄마나 내가 유학얘길 꺼낼 때마다 화를 내시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으셨다. 그런 아빠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부모가 옆에 있어도 말 안 듣고, 공부에 소홀한데 부모 없는 외국에 내 놓으면 어떻게 되겠냐는 게 아빠의 반대 이유였다. 하지만 그건 아빠가 우릴 못 믿고 걱정하셔서 하신 말씀이었고 마음을 굳힌 나는 아빠의 염려 때문에 유학을 포기할 순 없었다. 결국,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아빠를 설득했다. 흔쾌히 허락하시진 않았지만 아빠도 나의 완강한 결심을 꺽지는 못하셨나보다. 그 후부터 우리 집 전체가 나와 내 동생 유학 준비에 분주했다.

우리 집은 흔히들 생각하는 유학 보낼 만큼의 부유한 가정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두 남매가 가기에는... 내가 유학 간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우리 집이 갑부니 어쩌니 했지만 우린 그냥 서민층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이라도 친구들에게, 프랑스 유학이 미국, 캐나다 쪽의 유학보다 저렴하기 때문에(물론 이 것은 프랑스 유학의 여러 장점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우리 유학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밝히고 싶다.

내 동생은 중1이었기 때문에 언어 쪽이나 학습진도에 큰 장애가 없을 듯 했으나 난 고 1이었고 bac을 보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남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한 자라도 더 익히고 프랑스로 와야만 했다. 그래서 난 일찌감치 학교를 자퇴하고 유학원 원장님과, 96년 프랑스로 조기유학을 떠나 지금은 파리 1대학에 재학중인 언니로부터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문법, 발음 등을 배웠다. (언니는 여름방학이라 한국에 잠시 나와 있었다.) 이 때, 나랑 같은 날 오게 될 친구들도 만났고 친해져서 같이 공부하기도 했다. 유학에 대한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세 달을 보내고, 2001년 9월 3일 부모님께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양손에 짐은 많고 시간이 촉박했던 관계로 정신이 없었다) 내내 울면서 비행기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받은 엄마 편지를 읽으면서 정말 힘들게 결정해서 가는 만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비행기에서 12시간 동안 이것저것 생각하고, 놀고 얘기하고...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 프랑스 땅을 밟았을 때, 기분이 묘했었다. 드디어 오긴 왔구나, 하숙집에선 당장 말도 안 통할텐데 어쩌나 그 걱정들뿐이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평일에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주말엔 프랑스 가정을 소개시켜 주어 그 집에서 1년을 보내게 되어있는데 우리 하숙집은 음식을 제외하고는 한국 가정과 크게 다른 점이 없는 것 같았다. 오기 전에 친구들, 가족들이 음식적응이 안되더라도 꼬박꼬박 챙겨 먹으라고 했었다. 다행인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난 음식 적응을 아주 빨리 해버린 나머지 처음 도착할 때에 비해 살이 많이 쪘다.(가끔 나오는 토끼, 사슴, 말고기 등은 먹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음식문화에 대해 별다른 어려운 점이나 거부감은 없었다.

내 학교생활을 얘기해보자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수업방식도 우리나라랑 완전히 틀리고 어려운 불어는 알아듣지도 못해서 몇 번 수업을 빼먹은 적이 있다. 선생님들이 교실을 찾아가는 한국의 중고등학교와는 달리 학생들이 교실을 찾아가야 하는 이 곳에 적응을 못해서-사실 교실을 못 찾아서- 수업 시간에 화장실이나 복도에서 불안에 떨었던 기억도 있다.

다른 반에서 수업 받은 적도 있고... 그리고 웬만한 선생님들이 필기체를 쓰시는 관계로 하나도 못 알아보고 필기를 포기하기 일쑤였다. 몇 주 후에는 자연스럽게 나아져서 글씨도 거의 알아보고 수업도 대충 짐작으로나마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수업시간마다 절실히 느끼는 건, 한국과 프랑스의 수업방식의 차이이다. 이것 역시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한국에선 무조건 외웠다.

무조건 암기가 아니었더라도, 이해하고 난 뒤엔 다시 외워야 했다. 안 그러면 시험 문제를 풀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곳은 생각하고 이해하는 게 훨씬 더 중요했다. 무조건 외운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시험문제에 대한 답을 서술형으로 적어야 하기 때문에 외울 수도 없다. 물론 OX 문제라든가, 맞는 문장을 고르는 문제도 있기 때문에 아예 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이해'하는 걸 중요시한다. 만일 한국에서 한 학생이 어떤 정의를 내리거나 가설을 세웠을 때 그게 맞으면 그걸로 끝이지만 이곳에서는 선생님이 아무리 쉬운 것이라도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이유를 꼭 묻는다. 학생들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 답이 맞든 틀리든 꼭 손을 들어 대답하고, 실험의 횟수도 한국에 비해 훨씬 잦다.(생물 시간에 돼지심장을 해부한 적이 있다.)
프랑스 학생들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런 교육이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색달랐고 기초와 원리를 중요시하는 수업이 오히려 쉽고 재미있다.

나의 프랑스 생활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마치기로 하고...

내가 6개월 간 느낀, 프랑스에서의 힘든 점은 “그리움” 하나다. 학교에서 한국인이라고, 외국인이라고 약간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나도 같이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고 의사소통 문제도 처음에는 당연한 거고 또 그건 자기 노력여부에 달린 문제일 뿐이고 음식문제도 잘 적응했는데, 가족, 친구들이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말 안 듣고 혼나고 싸웠던 부모님, 친구들이고 싫다고 욕하던 한국일지라도 타국에 와 있는 이상 이 모든 것들은 다 그립기 마련이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게 정말 힘든 것 같다. 그래도 이런 그리움들이 나 혼자였더라면 심각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내 주위엔 혈족, 내 동생도 있고 같이 웃고 떠들고 위로 받을 수 있는 한국인 친구들, 동생들도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인끼리 뭉쳐 다니지 말라고 하지만 솔직히 이 외국에서 지나가던 동양인만 봐도 반가운데 같은 학교에 같은 한국인끼리 있으면 당연히 같이 뭉치기 마련이다. 아무튼 이 문제는 어쩔 수 없는 연대성이니 한국에서 나에 대해 기대를 걸고 계신 분들이 이런 점에 너무 염려하지 마시기를...
끝으로 유학을 준비하는 분들께 감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기 전에 문법이나 단어 등을 많이 외워두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프랑스 오기 전 배운 것들이 엄청난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 1때 와서 느낀 건데,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조기유학 계획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오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누구나 오기 전에 나름대로 각오를 하고 온 뒤에서 하루에 몇 번씩이나 다짐을 하곤 하지만 문제는 실천이 안 된다는 것이다. 부모님들도 이 점을 걱정하시는 것이겠지만 솔직히 유학 와서 간섭하고 잔소리하는 사람 없겠다, 한국보다 여러 면에서 자유롭겠다, 마음 굳게 먹지 않으면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기 십상이다. 물론 모든 학생이 다 이런 건 아니지만 여하튼 마음 독하게 먹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휴... 긴 듯하면서도 짧았던 6개월 간의 생활들, 느낀 점들을 두서없이 적어 보았는데 유학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참고가 됬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힘들지만 나를 믿고 유학 보내 주신 부모님께 감사 드리고(더 열심히 할게요!) 이 곳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유학중인 분들, 준비중인 분들께 행운이 있길 바란다.